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한 사람이 있는 정오

by 로그인시러 2017. 7. 6.

 한 사람이 있는 정오

 

 

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- 안미옥

 

   어항 속 물고기에게도 숨을 곳이 필요하다

   우리에겐 낡은 소파가 필요하다

   길고 긴 골목 끝에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

   작고 빛나는 흰 돌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

   나는 지나가려 했다

   자신이 하는 말이 어떤 말인지도 모르는 사람이

   진짜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

   반복이 우리를 자라게 할 수 있을까

   진심을 들킬까봐 겁을 내면서

   겁을 내는 것이 진심일까 걱정하면서

   구름은 구부러지고 나무는 흘러간다

   구하지 않아서 받지 못하는 것이라고

   나는 구할 수도 없고 원할 수도 없었다

   맨손이면 부드러워질 수 있을까

   나는 더 어두워졌다

   어디석은 촛대와 어리석은 고독

   너와 동일한 마음을 갖게 해달라고 오래 기도했지만

   나는 영영 나의 마음일 수밖에 없겠지

   찌르는 것

   휘어감기는 것

   자기 뼈를 깎는 사람의 얼굴이 밝아 보였다

   나는 지나가지 못했다

   무릎이 깨지더라도 다시 넘어지는 무릎

   진짜 마음을 갖게 될 때까지

 

 

   『창작과 비평』2015년 여름호

 

 

 

   -1984년 경기 안성 출생. 명지대 대학원 문창과 재학 중.

     2012년<동아일보>신춘문예 당선.

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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